목회서신
평안하신지요?
교회마당의 등나무 꽃이 한창입니다.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편지에 담아 보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 푸르름에 우리의 불안이 사그라들고, 은은한 그 보랏빛에 마음의 평화가 깃들며, 향긋한 그 향기로 저마다 사랑이 꽃 피고, 시원한 그늘 밑에서 용기가 생겨나며, 꽃잎 떨어진 자리에는 한빛가족들의 작은 행복들이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주변의 많은 교회들이 예배모임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빛교회도 지난 주 당회에서 ‘상황을 주시하며 서서히 조심스럽게 모이는 예배를 준비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앙인으로서 나름의 기준과 방향을 분명하게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구약성서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자신의 책 「마침내 시인이 온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를 모두 건넌 뒤에(이미 건넌 것으로 보이지만), 위대한 선장들과 기관사들이 제 일을 완수한 뒤에, 고귀한 발명가들, 과학자들, 화학자들, 지질학자들, 민족학자들 뒤에, 마침내 시인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 오리라. 하나님의 참 자녀가 와서 제 노래를 부르리라.”
기존의 세계에서 더 이상 출구를 찾을 수 없을 때, 마침내 시인이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이후에 변화될 교회의 모습들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똑같은 일상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온라인 예배의 활성화와 교육의 필요성을 저마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부분이지만, ‘코로나19’이후에 우리가 가야할 길은 ‘비대면(非對面) 원격(遠隔) 교회’가 아닙니다. 변함없이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고, 표정을 읽으며, 안아주고 어루만져주면서, 덜 소유하고, 더 공유하고, 더 연결하는, 작지만 따뜻한 ‘관계’의 교회입니다.
‘코로나19’사태를 지나면서 우리의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내 곁에 있는 이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는 공동체의 진리를 우리는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한빛교회가 제도나 규칙으로 통제되는 기계적인 단체이기보다는, 여전히 아날로그 가치들이 살아있는 사람냄새나는 신앙공동체이길 소망합니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효율적인 첨단기술시대 속에서도 인간의 가치와 역할은 다름 아닌 배려와 나눔과 신뢰와 희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빛공동체이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5월 3일 어린이주일 예배가 오전11시에 ‘전체교인 카톡방’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함께 만나 예배드릴 수 있는 그 날을 고대하며, 인간의 가치가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세상을 상상하는 시인으로 살아갑시다. 한빛가족들이 머무는 곳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2020년 5월 1일
한빛교회 담임목사 홍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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