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스펙타클의 사회 속에서 |
설교자 |
홍승헌 목사 |
| 날짜 |
2024년 2월 25일 |
우리는 그의 존재 자체로 그 사람을 바라보기 보다는, 그의 학력과 경력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은 이력서에 학력, 경력, 시상 기록은 물론이고, 연수여행을 갔던 것까지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물론 ‘이력서’에서 ‘이’자는 ‘신발 이(履)’자이고, ‘력’은 ‘역사 역(歷)’자로, 이력서란 결국 내가 걸어온 흔적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력서에는 나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 실패의 경험이랄지, 부끄러운 경력은 싹 빼고, 남에게 알리고 싶은 나의 밝고 좋은 면만을 기록하죠. 이력서만이 아닙니다. 요즘은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알리죠. 그런데 SNS에도 나의 실패나 아픔보다는 남들에게 알리고 자랑하고 싶은 것들만 올립니다.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당연한 욕망입니다. 그런데 인정받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남이 나를 알아주고 칭송하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의기소침해진다는 것입니다. 독립하지 못한 정신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좋은 일도 하면서 살죠.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 도움을 받은 사람이 나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으면, 그 순간 내 속에서 불편한 마음이 고개를 들죠.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면, ‘에이, 뭐 별 말씀을요.’ 하겠는데, 그럴 기회조차 안 주는 사람이 슬그머니 미워지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이 순간 우리는 보통 상처입은 내 마음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감사할 줄 모르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꺼내고, 그러면서 은근히 자기의 선행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나의 선행은 악취가 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같은 인간의 습성을 2000년 전 예수님도 이미 꿰뚫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경건한 신앙인들이 꼭 해야 할 것으로 자선과 기도와 금식, 이렇게 3가지를 꼽았습니다. 기도와 금식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자선은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경건의 덕목이 본래의 지향점을 잃고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변질될 때, 그 사람의 영혼은 병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기도는 경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금식하고 있다’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그 금식은 고행으로 변질됩니다. 견디는 것이지요. 헌금도 그렇습니다. 헌금을 드리면서도 ‘내가 이렇게 많이 바칩니다’라고 굳이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병든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태도를 한 마디로 요약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절 전반부입니다.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
남에게 보이려고... 이 말은 보는 사람이 없으면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누가 보기 때문에 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 ‘소외된 노동, 강요된 노동’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죠. 노예의 노동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을 경험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제 노동의 어려움은, 그 고달픔과 끝없음 때문이 아니라, 몽둥이 밑에서 의무적으로, 강제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일에는 내적인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즉, 자기 발생적인 기쁨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기쁨은 항상 남의 평판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충고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절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그렇게 하듯이,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칭찬을 기대하면서 자기의 선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발설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상은 안개처럼 흩어지고 만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자신이 ‘시상자’인 동시에 ‘수상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우리는 이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랑과 과시의 노를 저으면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반면 우리가 새겨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의 행실을 보고 계시고, 또 다 기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라의 여종이었던 하갈이 집에서 내쫓겨 광야를 방황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가셔서 위로해주시고 희망에 찬 미래를 약속해주셨습니다. 감격한 하갈은 그 하나님을 ‘엘 로이’, 즉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또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절입니다.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이웃과 가족은 물론, 자기 마음 속에서조차 떠벌리려는 자만심이나 집착이 없이, 너그럽게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죠. 다른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고 싶고, 내가 한 일에 대해 과분할 정도로 칭찬받고 싶은 게,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유혹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늘 이 허영심이라는 틈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접근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인격을 다듬고, 덕을 기르는 일보다, 허영과 간판에 더 큰 가치를 두라고 늘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이런 유혹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참 사람, 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자기의 허영심과 싸워야 합니다.
이 허영심과 싸워 이긴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8b~10절입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프랑스 작가 ‘기 드보르(Guy Debord)’는 자신의 책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현대사회의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스펙타클은 ‘보이는 것은 좋은 것이며, 좋은 것은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 인간의 특권적 감각은 다른 시대에는 촉각이었다. 스펙타클은 그것을 시각으로 대체한다. ... 스펙타클은 기만적인 것, 속이는 것, 사칭하는 것, 유혹하는 것, 속임수를 쓰는 것, 자극적인 것과의 등가물로서, 상품물신이 만들어 내는 환영이다. ... 스텍타클의 사회는 인간이 실현하는 모든 것을 존재로부터 소유의 관점으로 규정하는 명백한 퇴행을 초래한다. ... 스펙타클이 원칙적으로 요구하는 태도는 무기력한 수용이다. ... 스펙타클은 현대의 수동성의 제국 위에 머물고 있는 결코 지지 않는 태양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 스펙타클을 일으키는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켜 자신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종교와 정치, 이 두 분야만 봐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스펙타클의 사회인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펙타클을 일으키는 정치와 종교만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도 그가 스펙타클을 일으키는데 귀재이기 때문이며, 미국이나 한국에서 부흥하는 교회들 모두 스펙타클을 일으키는데 재빠른 교회들입니다. 자본과 인력이 있는 대형교회는 상대적으로 스펙타클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반대로 자본과 인력이 없는 교회들은 스펙타클을 일으키지 못하죠. 결국 스펙타클을 일으키는 대형교회로 모든 교회들이 흡수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모습이 정치를 망가뜨리고, 교회를 망가뜨립니다. 포퓰리즘 정치, 포퓰리즘 교회가 바로 그것이죠.
‘기 드보르’가 지적한 것처럼, 스펙타클을 일으키는 정치와 종교를 통해 사람들은 점점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갑니다. 스펙타클의 위력에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만 할 뿐, 저항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이는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원래는 추악한 모습이지만, 자기의 모습을 스펙타클하게 변형시켜 사람들의 마음을 꾀어내는 겁니다. 그 꾀임에 넘어간 사람들은 모두 희생자가 될 뿐이죠.
교회가 스펙타클을 일으킨다는 것은 성경의 표현대로 하자면, ‘세속에 물드는 것’(약1:27)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에서 그토록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교회 자체가 세속에 물들어 스펙타클을 일으키는 데 혈안이라는 것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생명의 힘을 지키려면, 스펙타클을 일으키는 일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저항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만들고, 그래서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무력한 소비자로 전락시키며, 소비의 희생자로 만들어 버리는 이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교회가 할 일은 너무 자명합니다. 스펙타클 사회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스펙타클을 일으키는 교회에 가지 않기, 스펙타클을 일으키는 목회자 조심하기, 교인된 내가 스펙타클을 일으키지 않기’
쉽게 말하면 ‘대형교회 가지 않기, 대형교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기’입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죠. ‘한국교회는 대형교회와 대형교회가 되고 싶은 교회, 이렇게 두 종류의 교회 밖에 없다. 목사도 마찬가지. 대형교회 목사와 대형교회 목사가 되고 싶은 목사, 이렇게 두 종류의 목회자 밖에 없다.’ 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스펙타클의 사회에 매몰된 교회의 모습을 잘 지적한 것 같습니다.
교회가 다시 살려면, 스펙타클을 일으키는 우리 사회에 저항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해야할 일을 하면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조용히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예배 드리고, 진실한 교제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내밀되, 그냥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하는 것입니다. 흙탕물을 맑게 만드는 법은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놓아두는 것처럼, 스펙타클이 너무 심해 흙탕물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 우리 삶, 우리 신앙을 다시 맑게 만드는 방법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들이 이렇게 망가진 이유는 무슨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일을 해서 스펙타클을 일으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스펙타클 사회에 저항하지 못하고 이 사회의 요구를 따라가면서, 가뜩이나 스펙타클 사회 때문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더 지치고 힘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스펙타클 사회에 저항하는 교회가 진짜 교회입니다. 스펙타클 사회에 저항하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얼마 전, 재미있는 시 한편을 만났습니다. 박성우 시인의 「학교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시인데요, 읽어드리겠습니다.
지루한 학교에 바퀴를 달아 투어 버스를 만들자. 신나게 달리면서 수업을 받고 쉬는 시간엔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자. 시험지 따윈 창밖으로 휘휘 휘날려 주자. 때로는 일 층 이 층 삼 층 사 층 학교를 줄줄이 떼어 줄줄이 사탕처럼 줄줄이 이어 기차를 만들자. 칙칙폭폭 학교 기차를 타고 바다에 닿자.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바닷가를 달리자. 짐칸에 접어 싣고 온 운동장을 펴서 기구를 만들어 띄워도 좋겠지? 봄과 가을엔 학교에 제트 엔진을 달아 아프리카로 소풍을 다녀오자. 목 짧은 기린을 만나면 숨바꼭질을 잘하겠다고 격려해 주고, 사슴을 무서워하는 사자를 만나면 초식도 나쁘지 않다고 등을 토닥여 주자. 돌아오는 길에는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학교 한 칸 내어 주고 가뿐하게 오자. 야 너, 수업 시간에 집중 안 하고 계속 멍 때릴래?
지루한 학교에 바퀴를 달아 버스를 만들고 기차도 만들겠다니, 얼마나 유쾌한 ‘멍 때리기’인지요. 운동장은 잘 접어 짐칸에 실어 놓았다가 기구를 만들어 띄우기도 하고, 학교에 제트 엔진을 달고 아프리카로 소풍 가고, 사슴을 무서워하는 사자를 만나면 초식도 나쁘지 않다고 등을 토닥여 주고, 가뿐하게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학교라면, 다들 이런 학교의 학생이고 싶으시죠?
시를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교회에 바퀴를 달 수 있을까 상상했습니다.
주일이 되면 하나의 종교행사처럼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회가 되어’ 그게 어디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싣고 달려가는 거죠. 하나님의 임재를 한 곳에 묶어 두려 했던 성전이 아니라, 광야를 자유롭게 움직이던 성소처럼 말입니다. 바퀴 달린 학교가 어디를 가든지 여전히 학교였던 것처럼, 성령의 제트 엔진 달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여전히 교회일 것입니다.
나를 더 드러내고 싶고, 더 높아지고 싶고, 더 커지고 싶고, 더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들로 가득한 스펙타클의 교회가 아니라, 우리 한빛교회는 자유로운 순례길에 만나는 누군가에게 교회 ‘한 칸 내어 주고 가뿐하게’ 다시 걸어가는 근사한 신앙공동체이길 바랍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교회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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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마태복음 6장 1~4절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그렇게 하듯이,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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